• [노트북을 열며] 부디 공약을 잊어주세요

    김기환 경제부 기자 한바탕 총선이 끝났다. 이달 30일이면 22대 국회가 문을 연다. 대통령과 정부, 여·야 정당은 물론 국회의원 당선자까지 선거 기간 내뱉은 말(정책과 공약)을 주워 담을 결산의 시간이다. 그런데, 진짜로?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들어 3월 28일까지 22차례 주재한 민생토론회에서 각종 정책을 쏟아냈다. 다주택자 중과세 철폐(1월 10일), 금융투자소득세 폐지(1월 17일),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건설 본격화와 철도·도로 지하화 추진(1월 25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 속도(2월 13일), 전남 영암~광주 ‘한국형 아우토반’ 초고속도로 건설(3월 14일),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폐지(3월 19일) 등이다. 하나같이 막대한 예산이 들거나, 세수(국세 수입) 감소가 불가피하다.   지난달 1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와 당선인들이 서울현충원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뉴스1] 선거에서 압승한 만큼 야당발(發) 공약도 힘을 받을 전망이다. 간병비 건강보험 급여화, 18세 미만 자녀 1인당 아동수당 월 20만원 지급, 경로당 무상급식…. 정점은 국민 1인당 25만원씩 ‘민생회복지원금’을 지역 화폐로 지급하는 내용이다.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에게는 1인당 10만원씩 더 쥐여주겠다고 했다. 소요 예산은 13조원. 민주당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경기 침체, 대량 실업 등을 추경 편성요건으로 규정한 국가재정법 89조가 무색하다.   당선증을 받아든 지역구 후보자의 공약은 한술 더 뜬다. 청와대 청주 이전(이연희·청주 흥덕),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C 노선 신창 연결(복기왕·충남 아산갑), 충주 허브 공항 유치(이종배·충북 충주), 지상철 수성 남부선 추진(이인선·대구 수성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필요 재원 ▶재원조달 방안 ▶이행 시기 ▶이행 방법 ▶예비타당성 조사 가능성 등을 따졌을 때 실현 가능성이 작다고 평가한 공약이다. 이런 공약(空約)이라면, 차라리 지키지 않기를 바랄 정도다.   한숨만 쉬기에 금배지의 어깨가 무겁다. 국회의원은 입법권을 행사하고, 행정부를 견제하며, 정부 예산을 심의·의결한다. 올해 정부 예산(656조6000억원) 기준 국회의원이 임기(4년) 동안 다루는 예산이 2626조4000억원이다. 허술한 공약을 내놓는 마음가짐으로 일한다면 곳곳에서 예산이 줄줄 샐까 우려된다. 당선자는 정책과 예산을 다룰 때마다 실현 가능한지, 세금 낭비는 아닌지 따지는 상식을 되새겼으면 한다. 더는 한 표가 다급해 ‘묻지 마 공약’을 쏟아내던 후보자 신분이 아니기에 하는 얘기다.     김기환 경제부 기자

    2024.05.01 00:22

  • [노트북을 열며] 누가 이준석의 파트너가 될까

    허진 정치부 기자 ‘보수 정당이 선거 연합 없이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명제는 4·10 총선을 통해 증명됐다. 이미 많은 사람이 지적했듯이 2년 전 대선과 이번 총선의 결과를 가른 결정적 차이는 윤석열 대통령을 만든 선거 연합의 붕괴다. 대선 승리에 일조했던 보수 성향 중도층과 탈(脫)진보 진영이 선거를 포기하거나 진보 진영으로 되돌아가면서 승패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세대 연합 또한 해체됐다. 지난 대선은 진보 성향이 강한 40·50세대를 60대 이상 고령층과 2030세대 남성이 연합해 이긴 선거였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국민의힘을 이끌 때부터 강조하던 ‘세대 포위’ 구도였는데, 이번에 그게 깨진 것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모습. [뉴스1] 게다가 3년 뒤 대선, 4년 뒤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인구 구조상 불리할 수밖에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연간 65세 이상 사망자는 30만3429명(2022년 기준)이다. 출구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65세 이상 고령층의 70%가 국민의힘에 투표한다고 봤을 때 이들의 사망으로 국민의힘은 21만 표를, 더불어민주당은 9만 표를 매년 잃는 셈이다. 이걸 5년 단위로 보면 두 정당의 격차가 60만 표(12만 표×5년) 줄어드는 것이고, 지난 대선 때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득표 차이 31만766표(0.73%포인트)를 뒤집을 수 있는 수준이다. 물론 새로 고령층에 진입하는 세대의 보수화가 진행되면 그 크기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86그룹’은 이전 세대의 고령층과 달리 진보 성향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국민의힘은 시간이 갈수록 불리한 싸움을 해야 한다. 해결책은 자연스럽게 ‘스윙 보터 성향이 강한 2030세대를 잡아야 한다’는 명제로 이어진다. 진단은 명확하지만 문제는 해법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꼰대 정당’ 국민의힘이 누구보다 공정에 민감하고 실용적인 이들 세대의 마음을 하루아침에 사로잡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성별 투표 성향도 확연히 갈려 세심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부작용이 더 클 수도 있다.   확실한 치료엔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당장의 대증요법은 이준석을 다시 아군으로 돌리는 것이다. 총선 비례대표 출구조사에서 20대와 30대 남성의 16.7%, 9.5%가 각각 개혁신당을 지지한 걸 보면 영향력의 실체는 분명하다. 더군다나 이준석은 ‘전국에서 가장 젊은’ 경기 화성을에서 대역전극을 펼치며 정치적 역량도 입증했다. 이를 목도한 국민의힘에선 벌써 “이준석과 협력하지 않고선 대선 승리가 어렵다”는 말까지 나온다. 3년 뒤 대선의 보수 진영 최종 후보는 결국 이준석과 손을 잡은 자가 되지 않을까.      허진 정치부 기자

    2024.04.25 00:20

  • [노트북을 열며] 불행의 탈을 쓰고 온 행복

    전수진 투데이·피플 팀장 외교부 출입 시절, 억울하게 좌천당한 공무원의 사무실을 찾았을 때 얘기다. 어쭙잖은 위로의 말을 꺼내던 내게 그 인사는 “좋아하는 영어 표현 중 ‘blessing in disguise’라는 게 있는데, 지금이 그렇다”고 담백하게 말했다. 위장된 축복, 혹은 불행의 탈을 쓰고 온 행복 쯤 되겠다. 평온했던 그의 표정이 선하다. 수년 후, 그는 비서관 여러 명의 보좌를 받으며 국가 중대사를 지휘했다.   불행은 행복의 필요조건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역경을 딛고 일가를 이룬 이들의 공통점은 불행을 벗 삼아 성장했다는 것. 최근 인터뷰한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 아비 모건은 남편이 난치병으로 쓰러지는 일상에서 회복 탄력성을 배웠다고 말했다. 통일부의 살아있는 전설인 허희옥 전 기자실장은 전화 인터뷰에서 “(암 투병 중이지만) 그래도 살아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곽정은 작가는 힘든 시기를 보낸 덕에 명상가로 거듭났다며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미소지었다.   모든 먹구름엔 은색 띠가 있다. 사진은 비행기에서 포착된 풍경. 김상선 기자 행복하려고 발버둥치다가 불행해지고 마는 것. 현재의 행복은 당연시하고 미래의 행복을 좇다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그게 우리의 실수가 아닐까. 불행에 당당히 맞설 회복 탄력성을 기르기가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답은 대가들에게 있다. 먼저 서예가인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그는 23일 어떤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살아있는 것엔 거스르는 힘이 있다. 씨앗이 흙을 거슬러 싹을 틔우고, 종이를 거슬러 붓이 글씨를 써내듯, 생명은 중심을 잡고 거스르는 힘이 있기에 아름답다.” 두 번째는 미국인으로 유럽 함부르크발레단을 반세기 넘게 이끈 존 노이마이어 안무가. 그는 23일 국립발레단 ‘인어공주’ 기자회견에서 “불행한 날도 있지만, 그저 매일 충실히 정진하는 게 핵심”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일상을 성실히 살아내며 불행을 거슬러 극복의 싹을 틔우고, 불행의 탈을 벗길 수 있다는 의미 아닐까. 파랑새를 찾다가 포기하고 돌아왔을 때 집에 있던 파랑새를 만난 것처럼, 인생의 비극을 피하려 않고 받아들이면 어느새 더 나은 존재가 되어 남에게도 빛을 공유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으로 이어진다. 잔인한 달 4월, 여러 불행 때문에 세상이 무너질 듯 힘들다면 이 또한 행복을 향한 과정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나아가자.   “불행의 탈을 쓴 행복”의 자매품으로 “모든 먹구름엔 은색 띠가 있다”는 말도 있다. 구름 뒤 태양이 환히 비추기에 테두리가 은색으로 빛나는 것을 두고, 모든 불행엔 행복의 단초가 깃들어 있다는 뜻으로도 쓰인다고 한다. 지금의 불행은 먹구름의 은색 띠라고 생각하자.     전수진 투데이·피플팀장

    2024.04.24 00:16

  • [노트북을 열며] 전기 전성시대에 다시 온 탈원전의 악몽

    안효성 증권부 기자 주식시장만 본다면 전기(電氣)의 전성시대다. 인공지능(AI)발 전력 수요 증가 기대감에 변압기 등 전력 인프라 생산 업체들의 주가가 올해 들어 가파르게 뛰었다. 연초부터 이달 16일까지 주가 상승률은 HD현대일렉트릭(151.2%), 제룡전기(120.4%), LS일렉트릭(81.6%) 등이다. 한국 증시 투자자라면 사명에 ‘전기’, ‘일렉트릭’이 붙은 회사만 골랐더라도 올해 짭짤한 수익률을 기록했을 것이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거침없는 AI 열풍으로  콘스텔레이션 에너지 등 발전회사들이 수혜를 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원자력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지고 있다. 데이터 센터에는 24시간 내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다. 원자력 발전은 연중무휴 안정적으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데다 탄소 배출량도 적다. 샘 올트먼 오픈 AI 최고경영자 등이 원자력에 꽂힌 이유다.   핵심 설비를 국산화 한 한국형 원전인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1호기(왼쪽)와 2호기. 1호기는 2022년 12월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뉴스1] 미국이 ‘원자력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는 보도도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소형모듈원전(SMR) 개발 업체 등 원자력 업체에 대한 각종 지원을 쏟아내고 있다. 재생에너지만으로는 2050년까지 탈탄소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고려와, 러시아와 중국 중심의 원자력 생태계 중심을 다시 미국으로 돌리겠다는 정치적 고려까지 포함된 결과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번 정부 들어 살아났던 원자력 부흥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사그라들고 있는 모양이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인 탈원전 정책 폐기 및 원자력산업 생태계 강화에도 반대한다는 뜻을 명확히 밝힌 상태다. 대신 2035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40%까지 늘리는 내용의 공약을 제시했다. 야권의 압승으로 끝난 총선 다음날인 11일 원자력 발전 관련주들이 많게는 10% 가깝게 하락한 이유다.   미국 하원은 지난 2월 28일  SMR 등 차세대 원자로 설계에 대한 승인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의 각종 지원책을 담고 있는 원자력 발전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에 찬성한 의원은 365명, 반대는 36명 불과했다. 해당 소식을 전한 뉴욕타임스는 “원자력은 당파 또는 이념적 분열이 있는 문제가 아니다”는 분석을 전했다.   같은 법안이 한국 국회에 올라갔다면 어땠을까. 아마 이념논쟁만 벌이다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원자력이 만병통치약이 아니지만 2050년까지 탈탄소를 달성하려면 원자력은 반드시 ‘에너지 믹스(energy mix·다양한 에너지원을 활용해 효율성 극대화)’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민주당 다이애나 드제트 하원의원)고 말할 한국의 야당 의원이 있을지 상상이 쉽게 되지 않는다.     안효성 증권부 기자

    2024.04.18 00:18

  • [노트북을 열며] 임기 내내 여소야대 정권

    오현석 정치부 기자 “3년은 너무 길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지난 2월 이 구호를 처음 입에 올렸을 때만 해도 허무맹랑했다. 이때 조국혁신당은 여론조사에서 순위권 밖이었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내부에는 ‘비명횡사’ 공천으로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런데도 대통령 임기 단축이라니.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며 “대통령 탄핵은 입에 올리는 순간 역풍이 확 분다”며 “그런 말은 조국혁신당이나 할 수 있는 얘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4·10 총선으로 ‘대통령 탄핵’은 금기어가 아니게 됐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1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다음 대선이 몇 년 남았죠? (3년이) 확실합니까?”라고 말했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13일 공식 브리핑에서 “사실상 탄핵에 가까운 불신임 평가”라고 총선 민심을 요약했다. 민주당이 ‘해병대 채수근 상병 특검법’ 입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을 땐 취재진 사이에서 “특검 수사 결과에 따라 탄핵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냐”는 질문이 먼저 나왔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선거 결과가 이렇게 무섭다.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 책상 위에 놓인 팻말엔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뜻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돌이켜보면 여야의 팽팽하던 균형추는 3월 4일부터 무너졌다. 야권에선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컷오프(공천배제)를 수용하기로 한 날, 정부는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호주 대사로 임명했다. 과거 윤석열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의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은폐 의혹에 분노하며 “제복이 존중받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던 터라, 여권 지지층조차 고개를 갸웃거렸다.   2주 뒤(3월 18일)엔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에서 대파 한 단을 들고 “그래도 875원이면 합리적”이란 발언을 했다. 하필이면 대통령 방문에 맞춰 산지 납품단가 지원(2000원)과 농협 자체 할인(1000원), 정부의 30% 할인 쿠폰(375원)까지 한꺼번에 적용됐다. 또다시 2주 뒤(4월 1일)엔 윤석열 대통령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논란에 대해 51분 동안 일방 담화를 발표했다. 이처럼 총선 패배의 시작과 절정, 끝엔 모두 한 사람이 있었다.   앞으로 윤석열 정부는 2027년 임기 말까지 거대 야당을 상대해야 한다. 대통령 임기 5년 내내 국회가 여소야대(與小野大)인 건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어느 때보다 정치적 창조성을 발휘해야 하는 극한 상황을 타개하는 것도 결국 대통령의 숙명이다. 이미 윤 대통령 스스로 용산 집무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팻말(The Buck Stops Here)을 가리키며 “책임은 내가 진다”고 설명하지 않았던가. 오현석 정치부 기자

    2024.04.17 00:20

  • [노트북을 열며] 가족관계 좋으면, 학원 덜 보낸다고?

    정선언 P1팀장 “우리 아이는 늦은 걸까?” 지난달 발행된 ‘대치동으로 본 초등 사교육 대해부’ 시리즈를 취재한 ‘헬로! 페어런츠(hello! Parents)’ 기자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이다. 불안은 자책으로 이어졌다. “내가 너무 무심했나?”   지난해 만난 학군 전문가 심정섭 더나음연구소장은 “학원 보내면 점수는 올릴 수는 있지만, 등급을 바꿀 순 없다”고 말했다. 대치동에서 20년 가까이 영어 강사로 일하며 내린 결론이다. 결국 공부는 스스로 해야 한다는 얘기다. 전직 교사 출신의 EBS 일타 강사 정승익씨도 “사교육을 아무리 받아도 10명 중 9명은 명문대 진학에 실패한다”고 잘라 말했다. 과도한 사교육이 아이는 낙오자로 만들고, 양육자는 가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가 『어머니, 사교육 줄이셔야 합니다』를 쓴 이유기도 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초·중·고 사교육비는 27조1000억원. 사상 최대 규모다. 초·중·고 학생 수는 전년보다 1.3% 줄었는데도 사교육비는 늘었다. 사진은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 [연합뉴스] 양육자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닐 것이다. 학부모의 학력과 경제력, 사회의 경쟁 강도 등 사교육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많다. 대부분 전자의 변수의 힘이 클수록 사교육도 많이 시킨다는 게 학계 연구 결과다. 반대로 사교육과 반비례하는 변수는 없을까? 만약 그런 변수가 있다면, 이걸 활용해 사교육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2021년 발표된 논문 ‘부모 수준과 가족관계가 부모 효능감과 양육 불안감을 매개로 초등 사교육에 미치는 영향 분석’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에 따르면, ‘좋은 가족 관계에 의한 부모 효능감 향상은 양육 불안감과 사교육을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 부모 효능감은 자녀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결국 부부관계, 그리고 자녀와의 관계가 좋으면 부모는 자녀 양육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고, 자신감이 클수록 사교육을 덜 시킨다는 얘기다.   최근 취재한 거실 공부 리포트에서도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함께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아이의 학습을 챙긴 6명의 양육자는 “거실 공부의 핵심은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덕분에 부모는 아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그럴수록 아이도 부모를 믿는다. 이들 가족 중심에 학원이 아니라 거실이 있었던 것은 결국 관계와 효능감 덕분이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지 않은 부모는 없다. 그러니 불안한 것이리라. 하지만 불안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에게 부족한 건 정보가 아니라 믿음 아닐까?     정선언 P1팀장

    2024.04.11 02:14

  • [노트북을 열며] 테무의 유통, ‘금사과’의 불통

    박수련 산업부장 전 세계를 휩쓰는 차이나 커머스 중 가장 위협적인 건 테무다. 구글 엔지니어 출신 1980년생이 창업한 테무는 중국을 ‘세계의 공장’이 아니라 ‘세계의 마트’로 재정의한다.   테무의 핵심 정체성은 ‘싼 가격’이다. 같은 중국산 공산품을 국내 플랫폼의 10분의 1 값에 판다. 주문 1건당 7달러(2023년, 골드만삭스)씩 손해를 감수하는 건 자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공장과 소비자 사이에 미들맨(middle men, 중개인)을 싹 없앴다. 유통 단계를 줄여 가격을 확 낮춘 것이다.   고물가로 삶이 팍팍해진 소비자들도 이 거래의 승자지만, 전 세계 도매상들의 하청 제조업자에 머물던 중국의 공장들은 테무를 통해 신분이 달라졌다. 판매자로 변신해 더 큰 이윤을 남긴다. 짝퉁, 유해물질, 노동착취 의혹 같은 테무의 그림자는 ‘싼값’이라는 센 볕에 가려진다.   지난달 10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판매중인 사과. [연합뉴스] 여기서 유통의 본질을 본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를 좁혀 좋은 물건을 더 싸게 공급하도록 자원과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 ‘대파 875원’ 논란이나 ‘금사과’ 문제의 실마리도 이 유통의 본질에서 찾아야 한다.   국내에선 농산물을 도매시장 경매를 거쳐 유통하는 제도가 40년 이상 유지되고 있다. 생활협동조합(생협)이나 대형마트 등의 일부 직거래를 빼면 대부분의 농산물은 전국 33개 공영도매시장의 블랙박스를 거쳐 금값이 된다. 생산 농가와 소비자 사이에 여러 단계(농가→산지 상인→도매시장→중도매인→소매→소비자)가 필수인 구조다.   ‘1985년생 청과 유통 매머드’인 가락시장에선 농협공판과 5개 청과 도매법인의 경매로 값이 정해진다. 낙찰가의 4~7%를 수수료로 받는 법인의 영업이익률은 20%를 상회한다. 낙찰가가 비쌀수록 중개인의 수익이 느는 고수익 장기 독점 체제다. 농가에서 2000원 남짓에 넘긴 사과 한 알 값이 지난달 서울 소매점에선 6000원을 돌파했지만, 농가 소득은 늘지 않는 구조적 원인이다. 정부가 농축산품 물가 안정에 쏟아붓고 있는 1500억원도 그 긴 유통 파이프라인 어딘가로 스며들어 사라질 뿐이다. 15년간 경북 의성에서 사과를 재배해온 권혁정 전국사과생산자협회 정책실장은 “세금으로 시장 가격을 인위적·일시적으로 낮추려 애쓸 게 아니라, 유통 단계를 줄일 시스템 구축에 돈을 쓰라”고 말한다.   작황에 따라 공급량이 달라지고, 공산품보다 물류 및 보관 비용이 더 드는 신선식품에선 유통 중간상의 역할도 작지 않다. 그러나 그 중간 단계를 줄이지 않으면 ‘좋은 먹거리를 더 값싸게’는 요원한 꿈일 뿐이다. 이상기온으로 작황 널뛰기가 심해지고 농촌 고령화로 생산성 저하를 피할 수 없는 시대, 임기응변만으론 사과값도 대파값도 잡을 수 없다.     박수련 산업부장

    2024.04.10 00:29

  • [노트북을 열며] 소리없이 빈곤해지는 사회

    한영익 사회부 기자 서울·부산 등 전국 사전투표소 40여 곳에 불법 카메라를 설치한 유튜버와 공범이 최근 구속됐다. 이들은 “사전투표 인원을 직접 세기 위해 카메라를 설치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부정선거 의혹에 과몰입해 직접 행동에까지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선관위는 30년 만에 총선 개표 과정에서 수검표를 부활시켰다. 사전투표함에 설치된 방범 카메라도 시·도 선관위 청사의 대형 모니터를 통해 24시간 공개한다. 2022년 대선 ‘소쿠리 투표’ 논란으로 신뢰도에 타격을 입은 선관위가 부정선거 의혹을 잠재우기 위해 택한 조치다.   경남 양산 사전투표소에서 발견된 불법 카메라. [연합뉴스] 불법 카메라 설치와 30년 만의 수검표는 한국 사회의 신뢰자본이 갈수록 빈약해지고 있다는 걸 방증하는 한 장면이다. 진영을 바꿔가며 10년 넘게 장기간 확산 중인 선거부정 음모론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2012년 대선 직후에는 ‘나는 꼼수다’가 디도스 의혹을, 2020년 총선 이후엔 보수 유튜버들이 사전투표 의혹을 확산시켰지만, 수검표 부활로까지 이어지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투개표시스템, 지지하지 않는 정치 세력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강하단 의미다.   영국 싱크탱크 레가툼연구소가 발표한 ‘2023 레가툼 번영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적 자본 지수는 세계에서 107위로 종합 순위(29위)에 비해 크게 뒤처졌다. 특히 사법시스템(155위)·군(132위)·정치인(114위)·정부(111위) 등 공적 기관에 대한 신뢰 지수가 낮았다.   국제조사기관 ‘월드 밸류 서베이’의 2017~2022년 조사에서도 한국인들의 행정부에 대한 신뢰도(12.9%)는 일본(50.0%)·멕시코(51.3%)보다 낮았다.   불신 사회에서는 추가 비용을 지출하는 게 필수적이다. 총선 수검표에 차출을 앞둔 공무원들은 1월 세종에서 집회를 열고 “강제 동원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공무원 5만명에 대한 수당도 최소 60억원 이상이 투입될 예정이다.   선택의 폭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스웨덴은 선거일 18일 전부터 장기간 사전투표를 한다. 사전투표를 했더라도 마음이 바뀌면 본 투표일에 다른 후보에게 재투표하는 게 가능하다. 공적 제도,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튼실한 신뢰 자본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묘기에 가까운 선거 시스템이다.   “불신의 벽이 경제성장률을 떨어트리고 있다”는 지적은 10여년 전부터 경제단체에서 꾸준히 나왔다. 정부와 정치권이 30년 만의 수검표가 갖는 사회적 의미도 되새겨봐야 할 때다.     한영익 사회부 기자

    2024.04.04 00:25

  • [노트북을 열며] 외교는 외교의 영역에 남겨준다면 “셰셰”

    유지혜 외교안보부장 다음 중 다른 정치인이 한 말은 무엇일까.   ①중국에도 셰셰(謝謝, 고맙다),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되지 뭘 자꾸 여기저기 집적대나.   ②중국의 인권 문제에 관심 갖기보다는 우리 경제와 국민의 삶에 관심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③(사드 추가 배치-한·미·일 군사동맹 발전-미국 주도 미사일 방어 체계 편입을 하지 않는다는 문재인 정부의 ‘사드 3불’ 입장은)적정하다고 생각한다. 다 중국과의 경제협력 관계 때문이다.   ④동서 해역에 북한이나 중국(어선의) 불법은 강력하게 단속하겠다. 불법 영해 침범인데 그런 건 격침해 버려야 한다.   이재명 대표의 “셰셰” 발언을 보도한 중국 언론. [환구시보 캡처] 정답은 없다. 네 발언 모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 말이다. ①은 지난달 충남 당진시 유세 현장에서, ②는 20대 대선 전인 2022년 1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③은 같은 해 2월 TV 토론회에서, ④도 같은 해 2월 언론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다.   “셰셰”와 “중국 어선 격침”을 넘나드는 그의 대중관은 혼란스럽다. 이를 이 대표는 “할 말은 한다”는 기조라고 설명해왔고, 그 기준은 “국익”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 대표가 말하는 대중 외교에서의 국익이란 건 그때그때 달라지는 것 같다. 어민 피해를 막기 위해 중국 어선을 격침한 뒤 일어날 중국의 보복은 감수할 수 있고,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사드 배치로 인한 보복은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는 뜻이니 말이다.   “셰셰” 발언에서도 새겨들을만 한 논지는 있다. 대중 외교 강화 필요성이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 동맹 강화-한·일 관계 복원-한·미·일 협력 업그레이드 등 순서로 외교 정책을 추진해 왔다. 우선순위의 옳고그름을 떠나, 그 사이 대중 외교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중국 사람들이 한국 물건을 안 산다”는 그의 주장은 사실관계 자체가 틀렸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3년 약 628억1662만 달러였던 중국 무역 수지는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20년 236억8080만 달러로 떨어지는 등 이미 하락 추세였다. 오히려 올 들어 대중 수출은 전년 대비 증가했다.   외교를 국내 정쟁에 끌어들이는 순간 어떤 식으로든 손실은 불가피하다. “셰셰” 발언을 중국 매체들이 불필요한 해석까지 붙여 대거 보도하는 게 대표적이다. 외교는 부디 외교의 영역에 남겨두자.   (참, 많이 회자되지는 않았지만, 이 대표는 “(현정부가)우크라이나에 경도돼 러시아가 북한에 군사기술을 제공한다”고도 했다. 이건 굳이 설명을 덧붙이고 싶지도 않다.)     유지혜 외교안보부장

    2024.04.03 00:36

  • [노트북을 열며] 이종섭 대사 사건, 공수처의 ‘불의타’ 일까

    박현준 사회부 기자 미스터리의 연속이다. 피의자 신분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주호주 대사로 임명됐는데 출국금지 조치가 걸려있었다. 대통령실은 까맣게 몰랐다고 한다. 야당이 고발장을 접수하는 사진은 검색만 하면 나오는데도 말이다. 논란 끝에 간신히 출국하는가 싶더니, 부임 11일 만에 회의 참석 명분으로 되돌아왔다.   출국금지 기준이 모호하다는 건 법조계의 오랜 과제다. 수사기관에 고발장이 들어왔다고 해서 일률적으로 출국금지를 내리지 않는다. 사건의 경중과 수사 진척 상황을 따져 결정하는데 그 기준이 외부에 공개된 적은 없다. 운용의 여지가 있는 영역이란 얘기다.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을 겨냥한 고발이 공수처에 쏟아졌지만, 김 전 처장은 재임 중 해외출장을 잘만 다녀왔다. “사건을 방치할 거라면 출국금지는 왜 했느냐”는 이 대사 측 불만에 일리가 없진 않다.   공수처 수사를 받고 있는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1일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한 뒤 차량에 탄 모습. 김현동 기자 이종섭 대사를 언제 소환 조사할 지는 기약이 없다. 실은 수사 주체인 공수처가 방치돼서다. 올해 1월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과 여운국 차장이 나란히 임기만료로 퇴직했다. 후임자 취임은 없었다. 여당이 공수처장으로 밀던 인물을 법조계가 반대해서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는 대타를 찾는 소동을 벌이다 지난달에야 후보자 2명을 추천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후임자를 지명하지 않고 있다. “현 정부는 민주당 정부가 설치한 공수처에 큰 미련이 없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공수처에서도 촌극이 있었다. 처·차장 동반 퇴직으로 3인자인 수사1부장이 처장 직무대행(대행의 대행)을 맡았다. 수사1부장은 그 직후  검찰 재직 시절 비위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사표를 냈다. 서열 4위인 수사 2부장이 처장 직대(대행의 대행의 대행)가 됐다. 그런데 웬걸. 사직 처리가 늦어진다고 수사1부장이 도로 복귀했다. 지금은 ‘대행의 대행’ 체제다.   리더십이 흔들리니 수사가 늘어지고, 소환이든, 기소든, 무혐의 처분이든 결정을 못 한다. 후임 처장에 누가 올지만 관심이 쏠린다. “처장 부재 하에서 수사 실무진이 보수적으로 행동하는 것”(전직 공수처 관계자)이란 분석이 나오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공수처의 혼돈에 현 정권 역시 책임이 없지는 않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이종섭 대사 사건을 공수처의 ‘불의타(不意打·예상하지 못한 사법시험 문제를 일컫는 법조계 관용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공수처와 야당의 내통·정치공작 의혹마저 제기한다. 그러나 성실하게 시험 준비를 하지 않은 채, 출제자 탓만 하고 있는 게 실상에 가깝지 않을까.     박현준 사회부 기자

    2024.03.28 00:24

  • [노트북을 열며] 비겁하다, 사실상

    김기환 경제부 기자 ‘사실상’ 수식어가 붙은 해명은 경계심을 갖고 한번 더 본다. 반박할 여지 없이 깔끔한 논리를 갖췄다면 굳이 사실상이란 수식어가 불필요해서다. “A가 문제다”라고 지적했을 때 상식적인 반응은 “A는 문제가 맞다. 잘하겠다”라고 시인하거나 “A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다”라고 반박하는 두 가지다. 그런데 “사실상 A를 B라고 봐야 한다”며 눙치는 식은 본질을 흐린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2023 회계연도 총세입·세출 마감 결과’를 발표하며 낸 해명이 그렇다. 56조4000억원 규모 세수(국세 수입) 부족이야 예고된 사실이라 화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난해 불용액(45조7000억원)이 주목받았다. 2022년 불용액(12조9000억원) 대비 3배 이상 불어나서다. 전체 예산 540조원 중 8.5%에 달한다. 정부가 예산·회계 시스템을 개편한 2007년 이후 사상 최대치다.   ‘불용(不用)’은 말 그대로 예산으로 편성했지만 쓰지 못한 것을 말한다. 세금이 적게 걷혀 난리인데, 한 편으로 재정을 남겼다는 얘기다. 불용이 발생하면 다음 해 예산으로 넘기거나, 올해 진행하는 다른 사업에 돌려쓸 수 있다. 역대 최대 규모 불용에 대해 기재부는 “사실상 불용은 11조원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구체적으로 “세수 감소에 연동해 줄어든 지방교부세·교부금(18조6000억원)과 정부 내부 거래(16조4000억원) 등 결산상 불용을 제외한 ‘사실상’ 불용만 따지면 10조8000억원으로 줄어든다”고 덧붙였다.   결산과 실제를 사실상이란 수식어로 구분한 것도 따져봐야 하지만 문제는 불용이 크게 늘었다는 사실 자체다. 기재부 설명대로 사실상 불용만 따져도 역대 최대 규모다. 세수 펑크가 발생한 2013년(8조1000억원), 2014년(6조7000억원)에도 불용액은 10조원을 밑돌았다. 예산을 짤 때는 재정이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효과까지 고려해 지출 규모를 결정한다. 이쯤 되면 정부가 주어진 예산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해 경기 침체를 부채질했다는 지적이 타당하지 않을까.   최근 1년 새 비슷한 장면이 이어졌다. 근로시간 개편을 추진하다 반발에 부딪혔을 땐 “사실상 주 69시간까지 근로하는 경우는 드물 것(고용노동부)”, 연구개발(R&D) 예산을 4조6000억원 삭감하고선 “R&D 성격이 아닌 일부 예산 항목을 다시 분류해서다. 사실상 줄어든 건 3조4000억원(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공 행진하는 물가를 우려하면 “OO 물가만 빼면 사실상 선방하고 있다(기재부)”는 식이다. 흔쾌한 시인도, 설득력있는 반박도 아니다.   비겁하다, 사실상.     김기환 경제부 기자

    2024.03.27 00:20

  • [노트북을 열며] ‘이재명은요?’ 대신 한동훈에게 필요한 것

    허진 정치부 기자 최근 급격히 재부상한 정권 심판론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을 탓하는 목소리가 여권에서 비등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과 성정은 이미 2년간 겪어온, 국민의힘이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상수(常數)다. 그동안 이유 없이 정권 심판론이 컸던 건 아니지 않나.   문제는 변수(變數)로 기대됐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점차 상수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 초보인 그에게 변화무쌍한 선거 기술을 바란 건 아니다. 하지만 최근 발언 패턴을 보면 그가 대충 어떤 말을 할지가 그려진다. 지난달 29일 기자가 ‘국민의힘 공천 과정에서 현역 교체율이 낮아 쇄신이 안 되고 있다’는 취지로 질문하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하고 있는 건 쇄신이냐”고 반문한 게 대표적이다. 취재진이 국민의힘의 문제를 지적하면 이재명 대표를 끌어들여 반박하는 “이재명은요?” 화법이 거듭되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월 국민의힘 경남도당 신년 인사회에서 참석자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모습. [연합뉴스] 최근엔 선거 메시지도 고착되고 있다. 국민의힘 선거대책위 발대식이 있던 지난 19일 하루에만 ‘종북(從北)’ 단어를 6번 이상 꺼냈다. 물론 종북 논란 인사의 국회 진입은 큰 문제다. 그렇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제일 걱정인 대부분의 국민은 반복적 종북 표현보다 민생 문제 해법을 집권 여당 대표에게 듣고 싶을 것이다. 오죽하면 “공안 검사도 아닌데 왜 그리 종북 얘기를 좋아할까”라는 말이 나올까.   한 위원장이 전략적 사고를 통해 변수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현재로선 크지 않다. 공천 문제만 봐도 그렇다. ‘시스템 공천’을 강조했지만, 결과적으로 현역 대부분과 친윤 핵심 모두가 살았고, 신인은 숨 쉴 틈이 거의 없었다. 반면 민주당 ‘친명횡재’ 공천이 시끄럽긴 했어도 안민석·김의겸·이수진(지역구) 의원 등 여권에서 평가가 좋지 않던 인사 상당수는 탈락했다. 법무부 장관 시절 한 위원장은 이들과 설전을 해봤기에 이들의 낙천 필요성에 공감할 것이다.   한 위원장이 공을 들여 영입한 김영주·이상민 의원 등 ‘귀순 용사’를 곧바로 공천을 준 게 패착이란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에서 핍박받은 이들이 무소속 출마를 했더라면 3자 구도가 형성돼 국민의힘의 승리 가능성이 더 커졌을 수 있다. 더욱이 민주당에서 이미 4·5선을 한 의원들이 파란색 대신 빨간색 점퍼를 입고 나타난다고 감동할 유권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4·10 총선은 이제 20일 남았다. 대중은 예상하지 못한 서프라이즈에 반응한다. ‘이재명이 더 나빠요’ 대신, 셀카 속 밝은 미소 대신, 바싹 엎드려 읍소를 하는 처절한 모습에 유권자는 좀 더 반응하지 않을까. 허진 정치부 기자

    2024.03.21 00:22

  • [노트북을 열며] 회칼, 의료개혁, 진정성

    전수진 투데이·피플 팀장 코리아 중앙데일리 기자로 고(故)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를 출입했을 때다. 대통령은 ‘진정성’이란 단어를 애용했다. 영어 번역이 고역이었다. 직역도, 의역도 어색했다. 미국인 에디터들도 갸웃했다. 어색한 번역 대신 한국에만 있는 개념인 전세(‘jeonse’)라는 말처럼 ‘jinjeongseong’으로 표기하자는 제안까지 나왔다. sincerity(진심) 같은 단어로 옮기기도 했지만, 문맥 이해에 지장이 없을 경우엔 아예 생략해버리기도 했다.   진정성이란 단어는 어느새 일상용어로 자리 잡았다. 총선을 앞두고는 여러 입장문에 단골로 등장한다. “사과를 진정성 있게 한다면(후략)” “정부도 진정성 있는 대화 테이블에 나와야” 등. ‘진정성 대잔치’까지 벌어진 듯하다. 그런데 그 진정성의 진정성이 쉬 납득 안 가는 건 나뿐일까. 의료 개혁이 특히 그렇다. 대화로 문제를 풀려는 의지보다는 상대방 듣지 않는다는 호통으로 느껴지기 일쑤다. 영화를 보러 갔더니 웬만한 영화 수준의 감정선과 영상미를 살린 보건복지부의 의료개혁 홍보 영상이 나온다. 그런 영상을 만드는 것보다 의사들과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하면 어땠을까.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 공백이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의료개혁 필요성엔 공감한다. 마음은 급한데 응급실 다섯 군데에서 “병상이 없으니 다른 곳 가봐라”고 퇴짜 맞았던 기억이 새롭다. 멈춰지지 않는 피를 보면서 의료 현장이 바뀌긴 바뀌어야겠다고 절감했다. 문제는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이런 식인지다. 소수의 기득권 또는 특권층을 공격해서 다수의 표를 얻으려는 정치적 계산법만은 아니기를, 진정 바란다.   최근 정치계와 언론계의 단연 화제인 회칼. 언론계 출신의 정치인이 이런 표현을 썼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지만, 그 이후 행태도 실망스럽다. 달랑 넉 줄짜리 사과문은 진정성과는 거리가 진정 멀다. ‘토착 왜구’ 같은 악플이나 욕설로 가득한 이메일은 이제 익숙하지만, 회칼 테러는 상상만 해도 오싹하다.   민주당인들 문제없는가. SNS에서 고 채수근 해병을 ‘채 상병 상병’이라고 한 모 후보는 또 어떤가. 그것도 처음엔 ‘채상병 일병’이라고 적었다가 고친 것이란다. “바빠서 그랬다”는 해명에는 진정성의 ‘ㅈ’도 찾기 어렵다.   어딜 봐도 진정성은 역시 신기루인가 싶은, 총선 D-20 풍경이다. 21세기 하고도 24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속이 타들어 가는 환자와 가족들 머리 위로 ‘진정성’ 유령이 떠돌고 있다. 전수진 투데이·피플 팀장

    2024.03.20 01:01

  • [노트북을 열며] 비트코인 광풍, 포모의 기억

    안효성 증권부 기자 식사 자리에서 비트코인 이야기가 다시 등장한 건 지난해 말 무렵이었다. 2021년 말 이후 좀처럼 꺼내지 않았던 화제다. 한동안 사라졌던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 기사도 등장했다. 올해 초 삼성전자 주식을 산 아빠와 비트코인을 산 아들과의 대화 등 다양한 변주가 이뤄진다.   이달 11일 국내에서 비트코인 거래 가격은 개당 1억원을 돌파했다. 원화시장 기준 역대 최고가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 대금이 코스피의 2배를 넘어섰다.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로 인한 기관투자가의 자금 유입, 채굴량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 등을 이유로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넘쳐난다. 비트코인이 내재 가치가 없는 투기 수단이라는 등 회의적 시선도 있지만,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분석처럼 비트코인이 바퀴벌레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며 나름의 생태계를 구축한 게 사실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비트코인은 투자재로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 11일 1억원을 돌파했다. 12일 서울 강남구 업비트 라운지에 비트코인 시세가 나오고 있다. [뉴스1] 그런데도 비트코인 가격 상승이 찜찜함을 남기는 이유는 2021년의 기억 때문이다. 시장에 풀린 유동성, FOMO 등이 결합해 부동산 등 모든 자산 가격이 다락같이 오를 때였다. 치솟는 집값에 20대, 30대는 암호화폐 투자에 달려들었다. 미국의 개발자들이 장난삼아 만든 암호화폐인 도지코인이 6000% 이상 치솟았다. ‘벼락거지’란 신조어가 생겼고, FOMO에 시달리는 이들이 넘쳐났다.   2021년의 결말은 어땠을까. 2022년 글로벌 금리인상과 함께 투자 광풍은 사그라들었다. 암호화폐의 급등하는 가격에 취해 ‘묻지마 투자’에 나섰던 이들은 큰 손실을 봤다. 미비한 투자자 보호 제도도 피해를 키운 원인이 됐다. FOMO 현상에 대한 기사는 사라졌고, 그 자리를 대신한 건 빚더미에 앉은 청년들이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도지코인, 페페 코인 등 밈 코인 가격이 들썩이는 등 ‘묻지마 투자’의 조짐이 재연되고 있다고 한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도 올해 7월은 되어야 시행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부동산 등 다른 자산으로 아직 FOMO가 번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불안 요소는 남아있다. 건설 비용 상승과 고금리의 여파로 주택 공급은 위축되고 있다. 30만 가구대를 유지해 왔던 신규 입주물량은 25년 24만 가구, 26년 13만 가구 등 매년 감소한다. 공급 부족이 시장의 풍부한 유동성, FOMO 등과 결합했을 때의 파괴력을 지난 정부 내내 목격한 바 있다. 다시 불이 붙는다면 이번 FOMO의 불은 더욱 끄기 어려울지 모른다. 비트코인 광풍이 찻잔 속 태풍으로만 그치길 바라는 이유다. 안효성 증권부 기자

    2024.03.14 00:20

  • [노트북을 열며] 이재명식 시스템 공천

    오현석 정치부 기자 공천 잡음이 일 때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시스템 공천’을 강조한다. 2016년 당 대표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처음 도입해 물려준 전가의 보도다. 이 대표는 지난 5일 ‘비명횡사’ 논란에 대해 “이전, 그 이전 총선에서도 이미 적용했던 공천 룰이다. 마음대로 장난칠 수 없다”며 “다 시스템에 따른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해킹이라도 당한 걸까. 시스템은 족집게처럼 비(非)이재명계를 속속 걸러냈다. 홍영표·기동민 의원은 일찌감치 컷오프(공천 배제)됐고, 강병원·전혜숙·박광온·윤영찬·정춘숙·김한정 의원이 한꺼번에 날아갔다. 가까스로 결선에 진출했던 박용진 의원마저 끝내 탈락했다. 민주당의 오랜 당직자들은 이번 공천을 이해하려면 두 가지 변화에 주목하라고 귀띔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2일 당선대위 출범식에서 “국민께서 심판해 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우선 의원평가 방식의 변화다. 각 의원실이 제출한 활동 자료와 동료 의원의 다면평가, 지역구 여론조사를 기계적으로 합산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평가위원의 ‘정성평가’ 항목을 22%로 늘렸다. 평가위원장엔 친명 색채가 강한 송기도 전북대 명예교수를 임명했다. 그러고는 ‘하위 평가자’는 경선 득표수의 최대 30%까지 감산하도록 해 불이익을 강화했다.   결과적으로 ‘하위 평가자’엔 비명계가 대거 포함됐고, 이들 대부분이 경선에서 패했다. 과거엔 ‘하위 명단’에 이렇게 비주류만 일방적으로 포함된 적이 없었다. 과거 공천 업무를 담당했던 한 인사는 “정량평가로 하면 특정 그룹에만 페널티를 주는 게 불가능하다”며 “이번엔 정반대였으니 뒷말이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당원·지지층의 변화다. 지난해 6월 기준 민주당 권리당원은 245만 명인데, 이 중 절반(129만명)가량은 이재명 대표가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후에 가입했다. DNA의 절반이 이미 바뀌었다. 이들은 여론조사 번호를 미리 공유하고 “수박을 박살 내자”고 서로 독려한다. 서울 강북을(박용진·정봉주)이나 은평을(강병원·김우영)처럼 ‘비명 현역’과 ‘친명 원외’가 맞붙을 때마다 ARS 여론조사 응답률이 치솟은 이유다.   이재명 대표는 이런 결과를 예상치 못했을까. 누구보다도 두뇌 회전이 빠른 그가 모르진 않았을 거다. 그는 지난달 28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정책간담회를 마친 뒤에도 “이번 공천 과정에서 이런저런 소리가 많이 나온다. 그러나 변화해야 새로운 시대를 맞을 수 있다”며 “새로운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직접 ‘변화’를 택했다는 뜻이다. 그의 선택 또한 4월 10일엔 국민평가를 받는다. 그게 대한민국 시스템이다. 오현석 정치부 기자

    2024.03.13 00:19

  • [노트북을 열며] 수학 문제를 푸는 방법에도 정답이 있을까?

    정선언 P1팀장 수학 문제를 푸는 방법에 정답이 있나요? 초등 수학 사교육 시장의 절대 강자 ‘생각하는 황소’(이하 황소) 이정헌 대표를 인터뷰하면서 던진 질문이다. 사실 질문할 때 마음 속에 이미 답을 갖고 있었다. 수학 문제엔 정답이 있다. 딱 떨어지는 하나의 답 말이다. 하지만 답을 구하는 방법엔 정답이 없다. 논리적 추론을 통해 맞는 답에 이르렀다면, 그 풀이 과정 역시 유효하다. 하지만 이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출제 의도, 시험 수준에 따라 다릅니다. “수능 같은 시험에선 효율적인 풀이 방법이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출제자가 문제 해결의 경로까지 설계하기 때문이다. 의도대로 풀지 않는 건 비효율적이란 얘기다. 황소에서 아이들에게 교사의 판서 내용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필기하게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에 출제자의 의도가 있듯 수업엔 교사의 티칭 포인트가 있기 때문”이다. 이정헌 황소 대표는 "수능 같은 시험에선 출제자가 문제 해결 경로까지 설계한다"며 "이런 시험에서 의도와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푸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주어진 시간 안에 정해진 문제를 실수 없이 풀어야 하는 시험 환경에선 이 대표의 말이 맞다. 최적의 경로를 두고 엉뚱한 방법으로 시간을 끌며 푸는 건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그의 답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바로 ‘수학을 공부하는 이유’다.   공학이나 수학·물리학 등을 전공하지 않는 한 고교 졸업 후 수학을 쓸 일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12년간 수학을 비중 있게 공부한다. 수학적 사고력을 기르기 위해서다. 이 대표가 인터뷰에서 강조했듯 수학적 사고력의 핵심은 논리적인 추론이다.   논리적 추론 능력은 널리 쓰이는 역량이다. 대학에 진학해 과제를 할 때, 취업 후 직장에서 보고서를 쓸 때, 창업해 사업계획서를 쓸 때 등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 없다. 수학적 사고력을 기르려면, 답을 맞히는 것보다 답에 이르는 논리가 훨씬 중요하다. 남과 다른 논리적 추론으로 답을 구했다면, 일반적인 방법으로 답을 구한 것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이걸 ‘창의적’이라고 부른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수학 문제를 채점할 때 답이 틀렸더라도 과정이 논리적이면 따로 점수를 주는 건 그래서다.   인공지능(AI)의 시대, 수학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때 필요한 역량은 답을 맞히는 게 아니라 답에 이르는 논리적인 과정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시대에 정해진 방법대로 답을 맞히는 수학 공부는 얼마나 유효할까? 이 질문은 이 대표에겐 하지 않았다. 대신 초등학생을 키우는 양육자로서, 자신에게 던지기로 했다.   ■ 대치동으로 본 초등 사교육 대해부 「 ①“초등 학원도 대입이 좌우” 국‧영‧수 시장 들여다보니(2월 26일 발행)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0970 ②“사고력 찍고 황소 간다” 수학학원 대해부(2월 27일 발행)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1216 ③“어렵게 공부해야 잘한다” 이정헌 생각하는 황소 대표 인터뷰(2월 29일 발행)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1784 ④“수능 영어, 초등학교 때 끝낸다?” 영어학원 대해부(3월 4일 발행)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2517 ⑤“사고력 좋아야 영어 잘한다” 김용 PEAI어학원 부원장 인터뷰(3월 5일 발행) ⑥“다독 잡고 정독으로” 국어학원 대해부(3월 7일 발행) ⑦“읽기? 쓰기가 문해력 핵심” 김수미 논술화랑 대표 인터뷰(3월 8일 발행) 」 관련기사 “수학의 정석, 왜 3번씩 보나” ‘생각하는황소’ 대표 인터뷰 ③ 초등생이 ‘고교 수학’ 끝낸다…입학시험에 5000명 몰린 학원 ② 국영수 1등 이 학원 다녔다…엄마들 쉬쉬한 ‘대치동 학원’ ① 수학은 동네 학원 보내라…단, 영어는 대치동뿐이다? ④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2024.03.07 00:23

  • [노트북을 열며] 애플·삼성의 예고된 굴욕

    박수련 산업부장 애플이, 삼성이 왜 이럴까. 허를 찔리고 쫓기는 상황이 묘하게 닮았다. 기민함·간절함이 사라진 1등들의 숙명인가.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초 “올해 안에 새로운 AI 기능을 공개하겠다”며 빈손으로, 계획부터 공개했다. 평소 애플답지 않다. 마이크로소프트(MS)에 나스닥 시총 1위를 내준 애플의 CEO는 그렇게라도 투자자 마음을 돌리고 싶었겠지만, 월말 주주총회 분위기는 싸늘했다. 6개월간 애플 주가가 14.6% 떨어지는 동안 MS 주가는 24.4% 올랐다.   애플 로고. [AP=연합뉴스] 애플은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천하의 애플이 ‘느리다’고 타박받는다. 10년간 경쟁사들이 AI 서비스의 백본(backbone)인 클라우드·데이터센터 등에 투자할 때, 애플은 연구개발(R&D) 투자를 매출의 한 자릿수(지난해 매출의 8%)에 묶어두고 아이폰 벌이에 취해 있던 대가다. 애플은 또 음성 비서 ‘시리’를 13년간 아이폰에 가둬 뒀고, 매년 1조 달러 이상의 매출을 내는 앱스토어에서 수수료를 챙기며 스스로를 독점 시장에 가뒀다. 최근 포기한 애플카 프로젝트가 보여주듯, 애플식 완벽주의도 기술 시장의 변곡점이 온 지금은 맞지 않는다. 반면, 클라우드로 체질을 바꾼 MS가 오픈AI에 투자해 자신들의 약점마저 보완하는 전략이 빛나는 시기다. 모바일 초반 실기한 뒤 절치부심해온 MS다.   삼성전자의 최신 AI용 메모리 반도체. [사진 삼성전자] 다음은 삼성전자. 세계 AI 칩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엔비디아가 메모리 반도체 1등인 삼성이 아닌, 2등(SK하이닉스)·3등(마이크론)하고만 AI용 최신 메모리(HBM3E)공급 계약을 했다고 한다. 한국도, 반도체업계도 모두 충격이다. 기술력과 영업력에서 삼성이 3등에게도 밀렸단 얘기라서다.   천하의 삼성이 어쩌다가? 애플이 그랬듯, 하던 대로 했기 때문이다. 대량 생산해서 시장 수요에 따라 공급을 조절하며 ‘팔면 끝’인 D램과 달리, HBM은 AI칩 설계자의 요구에 철저히 맞추는 ‘을 정신’이 필요하다. 잃을 게 없던 2등은 10여년 전부터 엔비디아와 함께 머리를 맞댔다는데 1등은 그 길을 무시했다.   ‘을 정신’은 AI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 더 중요하다. 자신만의 AI 반도체를 설계하려는 기업들이 산업별로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1위 파운드리인 TSMC가 삼성에 앞선 건 기술보다도 영업력, 즉 ‘서비스 자세’라고들 한다. 갑보다 갑의 문제를 더 잘 알고 먼저 해법을 제안하는 서비스는 오늘의 TSMC를 만들었다. 기존의 성공 노하우만으론 애플도 삼성도 굴욕을 피하기 어려운 지금, 이들의 행보에 따라 글로벌 첨단산업의 지도가 바뀔지도 모른다. 박수련 산업부장

    2024.03.06 00:23

  • [노트북을 열며] 두더지게임 같은 화물차 공포

    한영익 사회부 기자 2012년 8월, 경북 경산의 신대구부산고속도로에서 25t 화물차가 빗길에 미끄러졌다. 적재된 컨테이너가 맞은편 차로로 떨어져 주행 중이던 그랜저 승용차를 덮쳤다. 운전자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컨테이너를 고정하는 잠금장치를 하지 않아 일어난 비극이었다.   당시 부산 신선대 부두 앞 도로에서 경찰의 단속 현장을 취재했다. 30분 동안 진행된 단속에서 적발된 차량이 14대나 됐다. “차가 컨테이너와 같이 넘어가면 재산상 피해가 막심하다”고 털어놓는 운전자도 있었다. 그해에만 컨테이너 추락 사고가 5건 이상 일어났다. 당시 고속도로 운전자들은 한동안 컨테이너를 예의주시하며 공포에 떨어야했다.   지난 25일 화물차에서 빠진 바퀴가 덮친 관광버스 내부 모습. [사진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컨테이너의 공포가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뒤, 운전자들을 또다시 겁에 질리게 한 건 판스프링이다. 판스프링은 원래 차량 하부에 설치하는 완충장치로 강한 탄성이 특징이다. 그런데 일부 화물차가 많은 짐을 실을 때 적재장치가 옆으로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해 판스프링을 지지대로 불법 설치하고 있다. 이 판스프링이 제대로 고정되지 않으면 주행 중에 떨어져 대형 사고를 유발한다.   2018년 1월 경기도 이천 중부고속도로에서 관광버스가 밟은 판스프링이 반대차선 승용차 유리로 날아가 운전자가 숨졌다. 숨진 운전자가 결혼을 앞둔 예비신랑이었던 만큼 사회적 반향도 컸다. 사고가 끊이지 않자 국토교통부는 2020년 10월부터 적극 단속에 나섰다. 2021년 638건, 2022년 1547건이 적발됐다.   최근엔 바퀴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 25일 경기도 안성 경부고속도로에선 화물차 200㎏ 바퀴가 빠져 관광버스 앞 유리를 깨고 들어갔다. 사고로 버스 기사와 승객 등 2명이 숨졌고, 1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2018년 7월에도 평택 서해안고속도로에서 화물차 바퀴가 빠져 일가족이 탄 차량을 덮쳐 1명이 숨졌다.   컨테이너 단속을 강화하는 사이 판스프링이 사고를 일으키고, 판스프링을 대대적으로 적발하는 사이 바퀴가 빠져 사고를 일으키는 게 흡사 두더지게임을 연상케 하는 측면도 있다. 고전적인 적재물 낙하 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3월 충북 음성 중부고속도로에선 25t 화물차에서 10t 무게의 건설기계 롤러가 떨어져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어디서 뭐가 날아올지 모르니 운전자들 사이에선 화물차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 게 어느새 ‘국룰’이 됐다. 땜질 단속보다 공포를 해소할 종합적인 화물차 안전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한영익 사회부 기자

    2024.02.29 00:18

  • [노트북을 열며] 민생 토론회, ‘토론회’ 맞습니까

    김기환 경제부 기자 주최자는 새롭다는데, 신선하지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초부터 잇달아 주재한 ‘민생 토론회’ 얘기다. 정부 부처가 대통령을 상대로 하는 신년 업무보고를 대체한 행사다. 대통령실은 “민생과 밀접한 주제를 놓고 국민과 대통령, 공무원이 심도 있게 토론하는 ‘타운 홀 미팅’”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형식부터 생생한 토론과 거리가 멀었다. ‘짜여진 각본’에 가까워서다. 기업 대표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하면 공무원이 “불 꺼지지 않는 정부가 되겠다”고 답하는 식의 감동 없는 문답이 오갔다. 토론회를 준비한 정부부처 한 공무원은 “중립성·대표성을 띈 국민을 성별·나이·지역에 따라 참석자로 섭외했다. 생방송이라 돌발 사고가 나지 않도록 준비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대통령 발언만 선명하게 남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3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민생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힘들어서 안 되겠다고 호소하면,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정부가 돼야 한다.”(1월 4일 경기도 용인 중소기업인력개발원, 발언 직후 서민·소상공인 대출 연체기록을 삭제하는 ‘신용 사면’ 추진)   “상속세가 과도하다는 데 국민적인 공감대가 필요하다. 과도한 세제를 개혁해야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1월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부산이 글로벌 허브 남부권 거점으로 자리 잡기 위해 가덕도 신공항은 꼭 완수해야 할 현안 사업이다.”(2월 13일 부산시청)   하나하나 깊이 있게 토론해야 할 주제가 대통령의 입을 통해 정리됐다. 부족한 세수(稅收)를 확보할 대책, 국회 협조를 구할 방법 등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빠졌다. 주최자가 하고 싶은 얘기만 하는 건 토론회가 아니다. 토론회를 생중계한 유튜브에는 ‘뻔한 질문만 나온다’ ‘이게 무슨 토론이냐’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무엇보다 ‘추가 질문’ 없는 토론회라 맥이 빠졌다. 진짜 토론회라면 아래와 같은 추가 질문이 이어졌어야 한다.   “신용 사면은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제때 빚을 갚은 사람에 대한 역차별 아닐까요.”   “상속세를 내린다고 대기업 총수 일가가 소수 지분으로 전체 계열사를 지배하고, 총수 이익을 위해 다수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하는 후진적 기업 지배구조가 바뀔까요.”   “전국 공항 15곳 중 인천·김포·김해·제주공항을 제외한 11곳이 적자 신세인데 공항을 더 지어야 하나요.”   대통령의 실력은 껄끄러운 추가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연중 계속된다는 민생 토론회가 이름에 걸맞게 바뀌었으면 한다. 김기환 경제부 기자

    2024.02.28 00:21

  • [노트북을 열며] 국회가 5월 29일까지 꼭 해야 할 일

    박현준 사회부 기자 저녁 6시 무렵이면 전국 법원의 법정은 텅 빈다. 10년 전엔 어색한 풍경이었다. 밤 10시, 때로는 자정까지 야간 재판이 열리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판사건 검사건 쫓기듯 사건을 처리했다. 규정된 시한에 재판을 못 끝내고 구속된 피의자를 풀어주는 게 유행처럼 된 요즘과는 사뭇 다르다.   판사들에게 대법원 지침이 내려왔나 싶어서 알아보니 그건 아니라고 한다. “세상의 공기가 달라졌다”(중견 부장판사)고 한다. 판사에게도, 법원 직원에게도, 하다못해 증인에게도 대가없는 열정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게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재판이 늦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됐다. 1심 선고까지 2017년에는 민사 합의 사건 9.8개월, 형사 합의 사건 5개월이 걸렸지만, 2022년에는 각 14개월과  6.8개월로 늘어났다(2023 사법연감).   지난달 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원 시무식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이 법관 증원 필요성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판사 수를 늘려 재판 속도를 높이자는 건 이런 현실에서 나온 대안이다. 국민의힘도, 더불어민주당도 동의하고 있다. 3214명으로 고정해 놓은 판사 정원을 2027년까지 3584명으로 늘리는 내용의 법률개정안(판사정원법)도 2022년 12월 국회에 제출됐다.   그런데 개정안은 지난해 7월 이후 처리가 중단됐다. 국민의힘과 법무부가 2292명으로 묶인 검사 수를 판사 증원에 맞춰 늘리자는 검사정원법 개정안을 내놓으면서다. 발끈한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도 증원하자”고 역제안을 했다. “검사 증원과 별개로 판사 증원부터 하자”고 사법부가 설득했지만, 기싸움 중인 여야 의원들은 요지부동이다. 그러다 지금은 4월 총선을 앞두고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다음 국회에서 처리하면 되지 않겠냐고 안일하게 생각할 상황은 아니다. 총선이 끝난 직후인 4월 말까지, 혹은 늦어도 21대 국회의원 임기 만료일인 5월 29일까지 판사정원법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재판 지연 해소는 내후년에나 기대할 수 있다. 개정안을 22대 국회에 제출하고 법사위를 거치는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해도 올해 10~11월 정도나 본회의에 오를 수 있는데, 그 때는 올해 공고한 신규 판사 임용이 이미 끝난 뒤다. 거기다 내년부터 신규 판사 임용시 필요한 법조경력이 기존 5년에서 7년으로 늘어나는 걸 고려하면 2년 간의 인력충원 기근이 불가피하다.   “판사가 더 일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야간 재판이 다반사이던 지난날의 열정이 아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주 4일 야근 판사’라는 별명이 있던 강상욱 서울고법 판사가 갑작스레 유명을 달리한 게 불과 한 달 전 일이다. 노력과 희생만 강조하던 낡은 시대는 이제 아니지 않는가. 박현준 사회부 기자

    2024.02.22 00:30

  • [노트북을 열며] 죽은 나발니가 산 푸틴을 잡는 법

    유지혜 외교안보부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가장 위협적인 정적이자 반체제 운동가인 알렉세이 나발니가 지난 16일(현지시간) 결국 숨졌다. 충격적이지만,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다. 어쩌면 독살 시도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뒤 제3국으로의 망명을 택하지 않고 러시아에 돌아간 순간부터 그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왜 귀국했을까.   “하도 물어봐서 짜증났던 질문이다. 교도관들마저 녹음기를 끈 채로, 투옥이 확실하고 죽을 수도 있는데 왜 돌아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나의 조국도, 신념도 포기할 수 없었다. 가치 있는 신념을 갖고 있다면, 희생을 하더라도 기꺼이 지켜내야 한다.”   19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주재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열린 나발니 추모 집회. [AP=연합뉴스] 생전 나발니를 여러 차례 취재했다는 전 뉴욕 타임스(NYT) 모스크바지국장 닐 맥파쿼가 전한 나발니의 답이다. 그는 나발니의 귀국을 그리스 고전에도 비유했다. “영웅은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고향으로 돌아간다. 돌아가지 않는다면 영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맥파쿼는 나발니가 ‘푸틴 정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신조를 갖고 있었고, 오히려 망명으로 잊히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분석도 전했다. 그에게 정치란 곧 행동에 옮기는 것이었기에, 귀국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는 것이다.   나발니는 정말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수감 중 화상으로 법정에 출석할 때마다, 또 SNS를 통해 푸틴에 대한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사망 전날만 해도 판사를 향해 “당신 연봉으로 내 (영치금) 계좌를 보충해 달라”는 냉소적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푸틴이 나발니의 사망에 관여한 게 맞다면, 이런 나발니의 의연한 태도가 푸틴의 무언가를 자극한 게 틀림없다. 수십 년간 투옥으로 영웅이 된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사례를 푸틴이 걱정했다는 맥파쿼의 언급처럼 말이다. 공포를 지배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폭군이 아무리 억압해도 공포를 느끼지 않는 상대를 만난다면, 오히려 두려움을 느끼는 쪽은 자신이 될 수밖에 없다.   반대의 싹을 완전히 잘라내는 게 푸틴의 의도였다면, 빗나갔다. 사망했기에 나발니는 만델라, 마틴 루서 킹의 반열에 올랐다. 벌써 ‘포스트 나발니’로 여러 인물이 거론된다.   나발니는 용기의 상징으로 남았고, 푸틴의 두려움은 세상에 드러났다. 그가 생전 보여준 용기와 당당함으로 추측하건대 ‘죽어서도 살아 있는 푸틴을 잡을 수 있다’고, 눈 감는 순간에도 나발니는 생각했으리라. 유지혜 외교안보부장

    2024.02.21 00:27

  • [노트북을 열며] 이준석의 양두구육

    허진 정치부 기자 이준석 개혁신당 공동대표는 양두구육(羊頭狗肉·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 한자성어를 익숙한 정치 용어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가 2022년 8월 윤핵관을 겨냥해 양두구육을 꺼냈을 때 친윤계는 “윤석열 대통령을 개고기에 비유했다”며 극렬 반발했고, 결국 이 발언을 계기로 이준석은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성접대 논란 등 이준석의 부적절한 처신도 분명 문제 있었지만, 윤석열 정부가 한창 탄력을 받아야 할 시기에 여권 주류가 그를 배제하기 위해 벌인 집단 자해극은 지금의 정권 심판론 형성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   2022년 8월 13일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당원권 정지’ 중징계 이후 36일 만에 기자회견을 하며 눈시울이 붉어진 모습. [뉴스1] 정치 입문 때부터 따라다닌 ‘싸가지론’, 갈등 심화를 부추기는 ‘젠더 전략’, 아버지뻘 안철수 의원을 향한 끊임없는 무례한 행동, 친윤계 집단 행동과 유사한 ‘천아용인’의 떼거리 정치 등 숱한 논란에도 그가 보수 진영 일각의 지지를 받은 건 언젠가는 그가 보수의 지도자로 다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정치 입문 12년 만인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상계동 갈빗집에서 탈당 선언을 하며 눈물을 훔칠 때만 해도 ‘애썼다’는 말을 건네고 싶은 그였다.   그렇게 개혁신당을 창당해 홀로서기에 나선 그는 설 연휴 첫날인 지난 9일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손을 잡는 ‘빅텐트’ 통합을 결행했다. ‘이준석 신당’이란 이름이 더 익숙하던 통합 전의 개혁신당이 좀처럼 뜨지 않아 돌파구가 필요했고, 결국엔 제3지대가 총선 전에 한몸이 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지만 예상보다 너무 빠른 급변침이었다.   아무리 현실적 계산이 앞섰다 해도 불과 20일 전에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이라고 천명했다. 그래놓고선 통합 뒤엔 “‘개혁 보수’ 용어는 어쩌면 자유주의자의 별호였을지 모른다. (개혁 보수는) 보수의 테두리 내에서 쓸 수 밖에 없었던 이름”이라고 표변했다. 스스로를 부정하는 얄팍한 변검술로밖에 보이지 않는 해명이다.   개혁신당 당원 상당수는 전격 통합에 반발해 탈당하고 있다. 구태 정치에 신물이 나서, 반(反)페미니즘에 끌려서, 청년 정치를 갈구해서 등 이유야 다양했겠지만 이준석식 정치에 큰 기대를 하다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빠’가 ‘까’가 되면 무섭다고, ‘준빠’(이준석 극성 지지자)가 이준석을 맹렬히 비판하는 모습을 보니 어리둥절할 정도다. 그런 이준석은 14일에도 윤 대통령 부부를 겨냥해 양두구육을 꺼냈다. 하지만 정치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개혁 보수’라서 당비를 냈는데 돌아보니 ‘무근본 정당’이라면 이것이 진정 양두구육 아니겠는가. 허진 정치부 기자

    2024.02.15 00:22

  • [노트북을 열며] 개, 새의 품격

    전수진 투데이·피플 팀장 살기 팍팍한 게 한국만은 아닌가 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그의 책을 읽고 삶의 균형을 찾았다”며 추천한 저자, 데이비드 브룩스의 최근 뉴욕타임스(NYT) 칼럼의 제목은 이렇다. ‘슬프고, 외롭고, 화가 잔뜩 나 있고, 비열한 사회를 구원하는 법.’   브룩스는 “우리가 이렇게 된 건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거나, (알고 있어도) 굳이 그렇게 하려고 들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고 적었다. 이어 “우리는 정치에 과몰입돼 있고, 의기소침하며, 생기도 없고 교양도 없다”고 덧붙였다.   송미경 작가의 『오늘의 개, 새』(사계절) 중 29쪽. 백주에 정치인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뉴스에 계속 등장한다. 지난달 배현진 의원 벽돌 피습, 2022년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 망치 피습, 2006년 박근혜 전 대통령 커터칼 피습 등등. 폭력 영화는 필요 없다. 일상 곳곳에 폭력이 스며있으니.   자잘한 몰상식도 이젠 일상에 뿌리 내렸다. 버스를 타면서 기사에게는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던 사람이 다른 승객에겐 “길을 왜 막냐”고 밀친다. 밖으로 나가려 카페 문을 열었더니 바깥에서 먼저 슬쩍 들어오는 ‘노터치 얌체 입성’은 다반사. 비정상의 정상화다. 출퇴근길에선 각박과 옹졸이 느껴진다. 창밖은 시내 곳곳 나부끼는 정당 플래카드로 눈이 어지럽다. 서로를 비난하는 데 참 열심이다. 물고 뜯을 서로가 없으면 어찌 정치를 했을까 싶을 정도.   브룩스가 제시한 해결의 열쇠는 ‘문화’에 있다. 그는 문학이나 미술, 공연이 사람들의 메마른 감성을 적셔주고, 인류애를 회복하는 수단이 될 거라고 주장한다. 그가 쓴 책 『인간의 품격』 『두 번째 산』 역시 ‘나’보다는 ‘남’, ‘혼자’ 아닌 ‘함께’를 강조한다. 격하게 공감하며 떠오른 책이 있으니, 송미경 작가의 『오늘의 개, 새』(사계절). 평범한 개와 새가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사랑한다는 내용이다. 송 작가의 만년필에서 피어난 개와 새는 서로 싸우고 상처를 주다가도, 사과를 나눠 먹다가 뽀뽀를 한다. 개와 새도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거늘, 사람이라고 못할 게 뭔가. 브룩스의 책 제목처럼 인간의 품격은 인간 스스로 찾아야 할 터.   총선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지금, 이 사회가 더 사나워질 일만 있을까 걱정될 따름이다. 여와 야, 누가 개이고 누가 새인지, 하여튼 개와 새 모두에게 미안한 일이긴 하지만, 개와 새를 본받아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 그 흉내라도 내보길. 개와 새도 하는데, 인간이 못할쏘냐. 이렇게 쓰고 보니, 못할 것 같아 걱정이긴 하지만. 전수진 투데이·피플팀장

    2024.02.14 00:20

  • [노트북을 열며] 대환대출, 경쟁의 ‘약발’

    안효성 증권부 기자 “은행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졌다.” 최근 만난 A씨는 은행에 대한 분통부터 터뜨렸다. 주가연계증권(ELS) 등 은행 스스로 신뢰를 깎아 먹은 게 여럿이지만, 이번엔 대환대출 이야기였다. A씨는 지난주 ‘대환대출 인프라’를 통해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은행을 바꿨는데, 대출금리가 연 6%에서 연 3.7%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다달이 내야할 원리금은 월 160만원에서 110만원으로 50만원이 줄었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터치 몇 번으로 연간 이자 부담이 600만원 줄어든 것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고 한다. 6%대 대출을 내주고 있던 은행 지점장이 직접 전화를 해 “대출을 유지해주신다면 금리를 연 3.7%로 내려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A씨는 “깜깜이 이자장사로 은행들이 성과급 장사를 벌인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환대출 인프라에서 주택담보대출 갈아타기가 가능해 지면서 은행의 금리 인하 경쟁도 시작됐다. [연합뉴스] 대환대출 인프라는 지난해 5월 정부 주도로 시작됐다. 반응은 뜨겁다. 주담대가 대환대출 인프라에 포함된 지난달 9일부터 이달 1일까지 5대 시중은행에 접수된 신청 건수는 총 1만4783건, 신청액은 2조5337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자감면 효과도 뚜렷하다. 금융위에 따르면 주담대 대환대출의 평균 대출 금리 인하 폭은 1.5%포인트, 1인당 연간 이자 절감액은 337만원이었다.   대환대출 인프라 하나로 대출이자가 쑥 내려간 건 그간 은행에 없던 경쟁 때문이다. 5대 시중 은행들은 전 은행권 대출·예금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데다, 금융당국의 입맛에 맞게 금리를 움직일 때가 많다 보니 제대로 된 경쟁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대환대출로 각 은행의 실적 차가 벌어지는 등 경쟁의 강도가 한결 높아졌다고 한다.   은행 간의 금리 경쟁이 늘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지나친 금리 경쟁이 이어지다 보면 은행의 기초체력 저하 등의 탈이 생기고 결국엔 소비자 피해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은행이 이자장사로 번 돈을 어떻게 썼는지 따져보면 소비자에겐 실보단 득이 클 것 같다. 금융당국의 지난해 7월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방안’엔 “은행 이자 수익이 미래(자본확충, 벤처투자 등)를 위해 활용되지 않고 임직원과 주주를 위한 성과급과 배당으로 지급됐다”고 분석돼 있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예금과 대출 금리에 번번이 개입하며 ‘관치금융’이란 오명을 써왔다. 은행 역시 관치금융 그림자 뒤에서 땅 짚고 헤엄치듯 이자 장사를 해왔다. 대환대출 플랫폼의 교훈은 이렇다. 금리를 내리고 올리라는 금융감독원장의 한마디보다 은행 간의 경쟁 촉진이 소비자 편익에 훨씬 도움 된다는 것이다. 안효성 증권부 기자

    2024.02.08 00:41